어느 소녀가 자기 애완견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습니다... 그녀와 긴 세월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했던 친구 애완견을 정원사가 매장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봤습니다. 한 삽, 한 삽, 흙이 애완견에게 쏟아질 때마다 그녀의 행복도 함께 매장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손녀를 바라보던 그녀의 할아버지가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고 큰 거실 다른 쪽의 창가로 이끌었습니다. 그러곤 커튼을 열고 그녀 앞에 있는 넓은 화원을 보여주면서 그녀에게 부드럽게 물었습니다. “저 앞에 노란 장미 덤불들이 보이니? 네가 저것들을 심는 것을 도와주었던 것을 기억하니? 우리가 저것들을 심었을 때도 오늘같이 화창한 날이었단다. 그땐 그저 가시 많은 가지들뿐이었지. 그리고 이젠...... 저기 향기로운 꽃들이 가득하지 않니.” 그 소녀는 얼굴에 남아있던 눈물을 훔치고서, 벌들이 꽃 위에 앉고 나비들이 즐겁게 펄럭이는 것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주 많은 각양각색의 장미들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보아라, 나의 작은 소녀야. 인생은 언제나 우리에게 많은 창들을 준단다.”
(<아가페 AGAFE>중에서. 파드레 바르셀로 로시 지음/ 차동엽 옮김/ 오픈하우스)
배우 리처드 기어를 닮은 로시 신부는 ‘노래하는 미사’로 브라질에서 아이돌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스타 신부’입니다. 책 <아가페>는 칠백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합니다. 책을 읽다가 로시 신부가 궁금해져서 유투브를 검색해봤더니 과연 주르륵,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더라구요. 전통적 형식이 아닌 다른 창(窓門)으로 미사를 열어준 신부는 저 이야기속의 할아버지요 다른 창(窓)의 미사에서 새로운 감동을 발견한 가톨릭신자라면 소녀에 다름 아니겠지요.
지난 3월말 경 짧은 인터넷 뉴스 하나가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강원도 모 아파트 인근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서른한 살 청년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그의 유품에서 발견된 지폐 1000원에는 "엄마 미안해"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다’는 부분에서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청년 때문이 아니라 그 청년 엄마 때문이었습니다.
열아홉 살에 사고로 잃은 큰아들 때문에 평생 가슴으로 눈물을 흘려온 엄마의 딸이기에, 두 아들을 낳아 기르고 있는 엄마이기에 저는 그 때 얼마쯤은 청년 엄마의 마음이 되었나 봅니다. ‘어머니의 눈물을 닦을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를 울게 한 아들뿐’이라고 합니다. 그 엄마는 평생 어찌 눈물을 감당해야 할런지요. 이제 천 원짜리 지폐를 보면 문득문득 ‘엄마 미안해’가 생각나 또 콧잔등이 시큰해질 것만 같습니다.
청년에게는 ‘문을 닫으면 어딘가 창을 열어주신다’는 신(God)도, 저 소녀의 경우처럼 다른 창으로 이끌어주는 할아버지같은 멘토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아가페의 사랑’으로 키워준 엄마가 미소짓는 창을 한번 만 더 바라보았더라면.....
청년은 ‘아직 젊어서’ 몰랐겠지만, 나이 들어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누구나 자기 인생 속에 아픈 소설 하나씩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픈 창만을 내다보고 살았다면 살 수 없었을 사람들, 제 주변만 봐도 제법 된답니다. 하지만, 다른 창이 보였기에, 혹은 다른 창을 봐서라도 살아나갈 용기를 겨우겨우 낼 수 있었을 겁니다.
마음 공부가 덜 된 저는 사는 동안 시시때때로 더 아픈 창에 시선을 멈추곤 했지요. 하지만이 번에 큰 수술을 겪으면서, 결국 그 창을 만드는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제 마음임을 절감했습니다.
마음에 먹구름이 끼는 날이면 푸른 하늘이 보이는 창가로 가야겠습니다. 마음에 가시밭이 깔리면 색색깔 꽃밭이 보이는 창가로 가야겠습니다. ‘ 마음의 창’이라는 눈 속에 창밖 풍경을 가득 담아주면, 혹시 마음이 화창한 봄날로 변하지 않을까요?
인생의 窓
어느 소녀가 자기 애완견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습니다...
그녀와 긴 세월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했던 친구 애완견을 정원사가 매장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봤습니다.
한 삽, 한 삽, 흙이 애완견에게 쏟아질 때마다 그녀의 행복도 함께 매장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손녀를 바라보던 그녀의 할아버지가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고 큰 거실 다른 쪽의 창가로 이끌었습니다.
그러곤 커튼을 열고 그녀 앞에 있는 넓은 화원을 보여주면서 그녀에게 부드럽게 물었습니다.
“저 앞에 노란 장미 덤불들이 보이니? 네가 저것들을 심는 것을 도와주었던 것을 기억하니?
우리가 저것들을 심었을 때도 오늘같이 화창한 날이었단다. 그땐 그저 가시 많은 가지들뿐이었지.
그리고 이젠...... 저기 향기로운 꽃들이 가득하지 않니.”
그 소녀는 얼굴에 남아있던 눈물을 훔치고서, 벌들이 꽃 위에 앉고 나비들이 즐겁게 펄럭이는 것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주 많은 각양각색의 장미들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보아라, 나의 작은 소녀야. 인생은 언제나 우리에게 많은 창들을 준단다.”
(<아가페 AGAFE>중에서. 파드레 바르셀로 로시 지음/ 차동엽 옮김/ 오픈하우스)
배우 리처드 기어를 닮은 로시 신부는 ‘노래하는 미사’로 브라질에서 아이돌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스타 신부’입니다.
책 <아가페>는 칠백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합니다.
책을 읽다가 로시 신부가 궁금해져서 유투브를 검색해봤더니 과연 주르륵,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더라구요.
전통적 형식이 아닌 다른 창(窓門)으로 미사를 열어준 신부는 저 이야기속의 할아버지요
다른 창(窓)의 미사에서 새로운 감동을 발견한 가톨릭신자라면 소녀에 다름 아니겠지요.
지난 3월말 경 짧은 인터넷 뉴스 하나가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강원도 모 아파트 인근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서른한 살 청년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그의 유품에서 발견된 지폐 1000원에는 "엄마 미안해"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다’는 부분에서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청년 때문이 아니라 그 청년 엄마 때문이었습니다.
열아홉 살에 사고로 잃은 큰아들 때문에 평생 가슴으로 눈물을 흘려온 엄마의 딸이기에,
두 아들을 낳아 기르고 있는 엄마이기에
저는 그 때 얼마쯤은 청년 엄마의 마음이 되었나 봅니다.
‘어머니의 눈물을 닦을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를 울게 한 아들뿐’이라고 합니다.
그 엄마는 평생 어찌 눈물을 감당해야 할런지요.
이제 천 원짜리 지폐를 보면 문득문득 ‘엄마 미안해’가 생각나 또 콧잔등이 시큰해질 것만 같습니다.
청년에게는 ‘문을 닫으면 어딘가 창을 열어주신다’는 신(God)도,
저 소녀의 경우처럼 다른 창으로 이끌어주는 할아버지같은 멘토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아가페의 사랑’으로 키워준 엄마가 미소짓는 창을 한번 만 더 바라보았더라면.....
청년은 ‘아직 젊어서’ 몰랐겠지만,
나이 들어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누구나 자기 인생 속에 아픈 소설 하나씩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픈 창만을 내다보고 살았다면 살 수 없었을 사람들, 제 주변만 봐도 제법 된답니다.
하지만, 다른 창이 보였기에, 혹은 다른 창을 봐서라도 살아나갈 용기를 겨우겨우 낼 수 있었을 겁니다.
마음 공부가 덜 된 저는 사는 동안 시시때때로 더 아픈 창에 시선을 멈추곤 했지요.
하지만이 번에 큰 수술을 겪으면서, 결국 그 창을 만드는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제 마음임을 절감했습니다.
마음에 먹구름이 끼는 날이면 푸른 하늘이 보이는 창가로 가야겠습니다.
마음에 가시밭이 깔리면 색색깔 꽃밭이 보이는 창가로 가야겠습니다. ‘
마음의 창’이라는 눈 속에 창밖 풍경을 가득 담아주면,
혹시 마음이 화창한 봄날로 변하지 않을까요?
2013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