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곡(垠谷) 김미희


교통사고, 그 후...

김미희
2021-04-26
조회수 241

지난 해 12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머리와 눈알이 요요처럼 튕겨나갔다 들어온 듯한 충격...
2주일 가까이 먹먹한 두통에다 때로 머리가 오싹 죄어오는 느낌이 들어 결국 목 MRI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목뼈 이상은 발견되지 않아 교통사고 치료를 종료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MRI실 리포트에 뇌동맥 꽈리가 발견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비파열성 뇌동맥류. 뇌 속의 시한폭탄.
모 대학병원에서 만난 뇌 전문의는 수술 후 있을 수 있는 후유증을 ‘강조’했습니다.
꽈리가 있는 부분이 예전 같으면 손도 대지 못하던 정말 어려운 곳이다, 더구나 꽈리가 제법 크다,
후유증으로 의식불명 아니면 사지마비가 올 수 있다...
덕분에 연말 연시를 눈물콧물로 보냈습니다.

그 ‘만약의 사태’에 맞닥뜨리니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가족이었습니다.
정말 외로워질 남편, 성장했지만 아직도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큰 아이,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은 우리 늦동이,
‘어서 죽어야 할텐데...’를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엄마,
그리고 전화만 해도 울먹이는 대모님, 가까운 친구들...
‘그들에게 못다한 말이라도 남겨야 할텐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에 큰 병을 앓았었고 지금도 앓고 있는 친구들도 생각이 났습니다.
그들도 이랬겠구나, 이렇게 두렵고 힘들고 눈물나고... 그들의 아픔을 이제야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좀 더 가까이, 자주, 나누고 보듬어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두어야겠다 싶어 소지품을 정리하려다 그만 막막해졌습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이제 보니 오늘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쳤습니다.
2년 전 샀지만 아직 써보지도 못한 모자... 바로 며칠 전 세일에서 산 목걸이...

엘리자베스 퀴블러가 <인생수업>에서 말했던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는 구절을 이 과정 속에서 깊이 묵상했습니다.
퀴블러는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을 때 ’더 많이 일할 걸‘, 혹은 ’더 돈이 많았었다면 좋았을 걸‘이라고 후회하지 않고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본 적이 없어‘ 혹은 ’난 돈의 노예 였어‘라고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경우는, 둘 다 아니었습니다. 정말 후회되는 건, 선인들의 말이 정말 맞았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하느님께 진실로, 참으로, 가슴깊이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가족, 가까운 사람들, 직업...온통 감사할 일 투성이었습니다.
요즘 저의 두려움을 함께 나눠주고 보살펴주고 기도해주는 사람들,
그들이 보여준 사랑에도 얼마나 감동하고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알고 보면 이 교통사고도 정말 감사한 일인지요.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뇌동맥류를 어찌 발견했겠습니까.
하필 꽈리의 위치도 경추 1번 근처라 뇌MRI가 아닌 목 MRI에서 나타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지요.
원인을 알 수 없다지만 꽈리가 왜 생겼을까도 더듬어보니 머리를 크게 부딪힌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뇌출혈로 죽을 뻔 했던 것을 하느님께서 살려주신 것일 테고,
이번 수술을 잘 끝내고 나면 두 번씩이나 살려주시는 것이지요.

더불어 스스로 결론을 찾았습니다.
생과 사는 결국 우주의 계획, 하느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주님께 매달리는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요.
‘생활성서’에서 오려두었던 아래 글은 제 기도의 지침이 되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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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 육체를 갉아먹고 영혼을 따라 잠수하는 일체의 생각을 거둬라...
미래의 복병이 되는 근심을 거둬라...
기도할 때, 당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을 거둬라...
심지어 모래에 마지막 몇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희망마저 거둬라...
당신이 여전히 서 있는 작은 땅을 버려라.
그리고 추락하라. 신의 손안으로 떨어지는 깃털처럼.
(휴프레이더/ 큰나무/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알았더라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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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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